최근 학제간 연구팀이 약 20만 년 전 인류가 수면과 작업을 위한 편안한 장소를 만들기 위해 풀 침대를 사용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연구는 남아프리카와 스와질랜드 국경 인근의 보더 케이브(Border Cave) 지역에서 진행됐다. 이곳은 층서적(암석층) 기록이 제대로 보존됐기 때문에 석기시대에 대한 고고학적 자료가 풍부하다.

이번 연구에서는 광범위한 분광 분석 및 현미경 기법을 사용해 재가 여러 층으로 켜켜이 쌓여 있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여러 층의 재는 잠을 자는 동안 주위를 기어다니는 벌레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용도라고 분석했다. 어린 풀은 지금까지 보존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고고학적 증거가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현대까지 남아있는 고대 잠자리의 흔적은 곧 사라져버릴 것처럼 보이지만, 화학적 특징과 확대기법을 사용하면 여전히 구분할 수 있다.

비트바테르스란트대학 진화연구소의 린 와들리 교수와 연구팀은 기장아과(Panicoideae) 풀이 여러 다발로 묶여 있는 것을 확인했다. 넬슨만델라대학과 코트다르쥐대학 등의 연구진들도 이 같은 내용에 동의했다.

 

이번 연구를 이끈 와들리 교수는 풀로 된 잠자리 아래에 재로 만든 층은 바닥에 먼지를 없앨 뿐만 아니라 해충을 쫓아내기 위한 의도적인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고대인들은 바닥을 청소하기 위해 나무를 태워 만든 재를 사용했으며 새로운 잠자리 바닥에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곤충은 미세한 가루를 뚫고 쉽게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여러 문화권에서는 재를 곤충 억제제로 사용해왔다. 점토로 만든 용기에서 씨앗을 보존할 때도 그 위에 재를 두텁게 덮어 벌레가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다. 더 나아가, 연구팀은 풀로 만든 잠자리 중 가장 오래된 보더 케이브의 잠자리 상단에서 개화식물인 데이지과의 일종인 타코난터스(Tarchonanthus)의 흔적을 찾았다고 밝혔다.

와들리 교수와 연구팀은 풀 잠자리는 수면뿐만 아니라 작업 용도로 사용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석기 도구 작업으로 인한 잔재를 찾았기 때문이다. 이 잔재는 풀 잔재와 섞여 있었다. 또한, 연구팀은 20만 년에 사람들이 이미 자의적으로 불을 피웠을 것이며 이를 사용해 약용 식물과 재를 섞어 해충을 내쫓고 거주 지역을 깨끗하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전략으로 초기 지역사회에서는 건강상의 이점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잠자리에 사용된 풀은 잔디부터 밀, , 대나무, 사탕수수, 옥수수까지 그 유형과 크기가 다양했다. 고대인은 미적인 특성도 중요하게 고려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 식물들은 미적 용도 그 이상으로 기능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의 분석에 따르면, 초원은 세계에서 가장 큰 생태계 중 하나이며 전 세계 8억 명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지구에서 초원으로 덮인 토지는 20~40%에 달하며 전 세계 목초지 및 사료 작물 재배 면적은 3,500정도다.

 

보더 케이브가 위치한 남아프리카에서 1800년의 사료 작물 재배 면적은 25만 헥타르였지만 1990245,000헥타르, 200022만 헥타르로 줄었다. 중앙 내륙 고원 지역에서 가장 주로 볼 수 있는 식물은 위핑러브그래스(weeping love grass).

20128, 보르도대학 프란시스코 데리코 박사와 연구팀은 보더 케이브에서 발굴한 유기 공예품을 재분석했다. 그리고 후기 석기 시대에 이 동굴에서 살았던 고대인은 표기 용도로 톱니 모양의 뼈를 사용했다. 표기법이란 기술적 사실을 표현하는 상징 또는 그래픽, 문자 및 압축 표현으로 된 시스템이다.

데리코 박사와 연구팀은 보더 케이브에서 생활한 고대인은 뼈와 뼈로 만든 송곳, 땅을 팔 수 있는 나무 막대기를 사용했다고 덧붙였다. 이 도구의 용도는 수렵 및 채집이었다.

스탠포드대학의 고인류학자 리처드 클라인 박사는 약 5만 년 전 아프리카에 완전한 근대식 수렵-채집인이 등장했다고 주장하는 보르도대학 연구팀의 가설을 지지했다. 그리고 행동의 변화 또는 진보를 통해 생활 범위가 근대 아프리카에서 유라시아로 성공적으로 확대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남아프리카의 또 다른 동굴에서 생활했던 고대인이 75,000년 전 뼈와 석기 도구, 염료 등을 사용했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된 바 있다. 이러한 공예품 대다수는 6만 년 전 사라졌다.

비트바테르스란트대학 연구팀의 결과는 인류의 조상이 해충이 없는 편안한 침구를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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